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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시계는 오후 1시43분 2초. 당신은 몇 시인가? - 공생공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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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희의 썰] ‘이제와 돌아보니’(12)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윤설희 전 KB생명보험 부사장

나는 지난 3월에 34년의 조직생활을 공식적으로 끝내고 집으로 귀환하였다. 소위 퇴직이란 것을 한 것이다. 내 나이 58세. 한국 나이다.

이제는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100세 시대. 100세 인생을 하루 24시간으로 대입하여 인생시계를 만들어 보자. 새벽 3시에 12살이 되고, 아침 6시가 되면 25살이다.

우리가 활동을 시작하는 아침 7시는 실제로 경제적 자립을 하는 서른 즈음이다. 실제 생애와 꽤 맞아 보인다.

오전 9시는 한창 일할 나이인 37세쯤이 된다. 그리고 점심시간인 낮 12시에 50세가 되는 거다. 이제 막 회사문을 나선 나는 만 57세, 낮 2시가 조금 안 되었다. 정확히 낮 1시 43분 2초다.

그러니까 내 인생시계상 지금 바깥은 하루 중 가장 밝고 기온도 높은 때다. 과일과 곡식은 결실을 위해 세포 하나하나를 활짝 열고 해와 땅의 기운을 가열차게 빨아들이고 있는 시간인 거다.

그런데 낮 2시에 퇴직한 우리는? 왠지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분명 인생시계는 절정의 순간인데 우리 기분도 최고인가? 어떤 사람은 다시 힘차게 제갈길을 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우두커니 한낮의 태양 아래 길을 잃는다. 어떤 부류가 더 많을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칼 융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은 오전 인생의 프로그램으로 오후 인생을 살 수 없다. 아침에 위대하던 것이 저녁에는 시시한 것이 되고, 아침에 진짜였던 것이 저녁에는 가짜로 바뀌기 때문이다.”

칼 융에 의하면 50세까지의 프레임으로 50 이후를 살 수는 없다. 숨 가쁜 오전 시간을 마치고 오전과 오후가 교차하는 12시에 우리는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평소 존경하는 지인이 퇴직 3일 전에 책 한 권을 보내주셨다. 그 책은 전반부 인생과 후반부 인생에 대해 쓴 리차드 로어의 책이었다.

그는 전반부 인생의 임무는 자기 인생을 위해 튼튼한 컨테이너를 만드는 것이고 후반부 임무는 이 컨테이너에 내용물을 채우는 것이라 말한다.

전반부 인생에서 튼튼한 컨테이너를 만드는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 내기 위한 것들 즉 내 정체성, 가정, 인간관계, 친구, 공동체, 생활의 안정 등일 것이다. 거기에는 자연스레 성공, 명예, 부의 축적 등이 포함되겠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전반부의 임무에 너무 많은 피와 땀과 눈물과 시간을 쏟아내고 지쳐 떨어진다. 후반부 임무를 생각할 겨를없이 전반부는 끝나 버린다. 낮 2시 즈음에 우리가 멍하게 서 있는 이유이다.

로어에 의하면 우린 강한 에고를 가지고 전반부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미진한 전반부 인생으로 돌아가 그것을 마저 시도하려 한다. 후반부 인생을 출발도 못 하는 것이다.

반면 전반부 인생을 꽤나 성공한 사람들은 그것의 결실을 따먹으며 후반부 인생에 과제가 있음을 잊어버린다.

내 주위의 퇴직한 선배들도 주로 두 부류이다. 한쪽은 전반부에서 자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했음을 원망하며 다시 기회를 잡으려 벼른다.

또 다른 부류는 꽤나 만족한 지위에서 퇴직한 후 후배들을 앉혀 놓고 과거의 성공을 무한 반복한다. “그 시스템 내가 만들었지. 그것도 내가 부장 때 기획했던 거야. 참 내가 일은 무식하게 많이 했지!”

두 부류 모두 과거에 갇혀 있지만 나는 후자가 더욱 싫다. “내가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선배 대우 차원에서 가끔 식사 한번 모신다는 자리가 고역이 된다. 한 번만 더 들으면 10번째다.

에고에 가득 찬 ‘어른 젖먹이들’. 이원론적인 사고로 분노를 표출하고 배척하고 부정하며 상대가 틀리다고 서로 맞받아치며 세상의 소란에 숟가락을 더한다. 인생시계가 멈춰버린 그들. 오후 시간으로 인생모드를 전환하지 못한 그들. 나는 언젠가부터 이런 선배들과의 만남을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후반부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후반부의 임무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전반부 인생은 우리에게 충분한 자극을 주었고 이원론적 사고도 전반부 인생을 살아나갈 때 꽤나 쓸모가 있었다.

그러나 후반부 인생은 고요, 침묵, 배려, 연민, 회복, 치유, 연결, 통합, 그리고 그 너머를 보는 것 아닐까? 세상의 소음 아래 더 깊은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 그러니 선배님들께 감히 고한다.

이제 오전 프로그램을 내려놓으시라고. 당신의 인생시계는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가? 당신이 아직 오전을 살고 있다면 기존의 프로그램 안에서 전반부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 내자. 후반부 인생을 시작할 때 되돌아 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것은 결과의 성공 여부와는 다르다. 이제 낮12시, 50이 다가오는 후배들이여! 오후를 위한 인생모드로 전환을 시작하자.

지금껏 만든 튼튼한 컨테이너에 나와 가족, 내 회사를 담았다면 이제 주변과 사회, 그리고 지구와 우주를 담자. 50은 나의 원둘레를 넓히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놓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현직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나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 남겨지는 후배들을 위해 휘청거리고 신음하는 세상을 위해 보다 넓고 깊게 고민하자. 얼마 남지 않은 전반부 인생이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나는 조직에서 누군가 퇴직이야기를 화제로 삼을 때 흡사 일에 대한 열정이 떨어지는 것으로 치부하며 눈총을 주는 것이 못마땅하다. 그 반대로 회사는 퇴직 후 인생 후반부 이야기를 장려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에 더욱 충실할 수 있고 후반부 인생의 의무를 위한 삶을 준비할 수 있다.

나는 12시를 조금 넘긴 시점에서 내 후반부 인생의 의무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배워서 알게 된 교훈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기’다. 특히 내가 실패한 경험 말이다.

칼융 선배님이 또 한 번 좋은 말을 하였다. ‘ 걸려 넘어진 곳에서 순금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오전 시간 내가 넘어졌던 경험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면 결코 보지 못했을 순금의 경험들을 말이다. 그것이 ‘이제 와 돌아보니’ 칼럼을 시작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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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07, 2020 at 06:3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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